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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한 개인의 기억에서 시작된 서울 이야기다.
얼마 전 어머니를 모시고 삼청동의 새 공간을 찾았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으셨는데, 그날 이후 조금씩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장소들이 바로 이 근처였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기억은 골목과 지형에 붙어 있었고, 어떤 기억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이야기로만 전해졌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한 도시의 과거가 반드시 기록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계속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경험은 자연스럽게 김한용의 사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김한용의 사진 속 서울은 특정한 사건을 강조하거나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보다, 도시가 실제로 살아 움직이던 순간들을 조용히 남겨 둔다. 거리의 풍경, 겹겹이 이어진 지붕들,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 같은 것들이 특별한 설명 없이 화면 속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진 속 장면은 어떤 이에게는 구체적인 장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이미 사라진 시간의 감각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은 김한용이 촬영한 서울의 항공사진들이다. 1960–70년대 서울시의 의뢰로 하늘에서 촬영된 이 사진들은 사진가에게도, 당시의 대부분 사람들에게도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시선이었다. 행정적 목적 속에서 찍힌 사진들이 시간이 지나 지금에 와서는 과거의 서울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 사진들은 서울의 지형과 거리의 구조를 한눈에 펼쳐 보이며,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어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이 사진들이 지금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전해주는 이유는 그 안에 의도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함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촬영의 주요 대상이 아니었을 거리의 사람들, 골목의 움직임, 일상의 풍경들이 우연히 화면 속에 담겨 있다. 당시에는 부수적인 요소였을 그런 장면들이 오늘날에는 오히려 시간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나는 김한용의 사진 속에서 바로 그런 요소들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서울 시내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겹쳐지는 경험을 했다. 사진은 단순히 지나간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흔적을 함께 전하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에 별도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김한용의 사진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간과 장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속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특정한 이야기를 강요하기보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이에게는 오래전에 지나갔던 거리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서울의 과거가 상상 속에서 그려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관람객들은 사진을 바라보는 동안 저마다의 기억과 경험을 그 위에 겹쳐 보게 된다.
삼청동으로 이전한 갤러리 더 스페이스중학의 첫 전시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공간은 단순한 전시 장소가 아니라, 도시와 기억의 시간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스페이스 중학 사진연구소는 전시뿐 아니라 출판과 대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그 첫 번째 시도이기도 하다.
김한용의 사진은 한 도시의 풍경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 도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시간을 함께 전하고 있다. 이 사진들은 특정한 사건의 기록이기 이전에, 한 도시를 지나온 시간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조용한 신호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을 ‘서울 메시지’라고 붙였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작품을 제공하고 관리해 준 김대수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전시의 방향과 구성에 대해 조언을 나눠준 한금현 선생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 이원균
스페이스중학 사진연구소 / 갤러리 더 스페이스중학 -
한금현 (전시기획자)
2005년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일환으로 “Fast Forward: Photographic Messages from Korea” 한국 현대사진전이 열렸고 김한용의 광고 사진이 특별 섹션으로 전시되었다.[1] 동서양을 관통하는 광고 사진의 강력한 색채와 키치적인 이미지가 한국 사진의 역사적인 단편으로 제시되었다. 당시 80대의 김한용 선생은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오프닝 멘트를 시작하였고 “엽!”하는 기합으로 해외 관중을 압도하였다. 김한용 선생의 광고사진이 현대미술 전시의 첫 발을 딛는 데뷔 무대였다. 그 후로 오스트리아 현대미술전, 광주비엔날레 등 대규모 현대미술 행사에 초대되었고 그의 광고 사진은 현대미술의 관점으로 재평가받게 되었다.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하면서 김한용의 사진이 정리되는 계기가 생기게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에 아시아문화정보원이 새로 개관하면서 한국 문화 예술에 대한 아카이빙이 시작되었디. 한국 사진의 아카이브 제1의 프로젝트로 김한용 사진이 선정되었고, 방대한 양의 사진이 디지털화하고 메타데이터 작성하는 아카이빙 초기 단계가 시작되였다. 충무로에 있는 김한용 사진연구소[2]는 한 자리에서 50여년을 지켜왔기에 수만 개의 필름이 버려지지 않고 보관될 수 있었다. 실제로 수십 만개가 넘는 필름이 남아 있었고 대부분은 방치되어 있는 B컷 필름이었다. 당시 사진가는 A컷 필름을 광고주나 제작자에게 주었기 때문에 김한용 선생이 보관했던 필름은 B컷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김한용 선생은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작업량이 엄청나서 하나의 완성작을 위하여 수많은 롤의 필름을 사용하였기에 공개되지 않은 A컷 같은 B컷 사진이 대량 남아있었다.
“이런 것들이 무슨 가치가 있어? 남 보기 부끄럽지,,, ”하며 안 보여주시려던 것을 하나하나 정리하니 실로 귀중한 대한민국의 근대 역사가 그곳에 담겨 있었다. 한 사진가가 90 평생을 한 우물만 파며 이루어낸 사진 작업은 개인의 업적을 넘어 사회와 국가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자료이며 작품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김한용의 사진에는 아카이브로의 덕목이 들어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엄청난 양의 방대한 이미지가 한 시대를 다양한 시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메타데이터가 된다.
1924년 평남 평천에서 태어난 김한용은 한국 전쟁 때에는 종군기자로, 이후에는 보도 사진가로 활동하였다. 1950년대 김한용사진연구소의 시작과 함께 광고사진가, 영화스틸사진가로 활약하며 한국 상업사진의 선구자로 추앙받으며 사진가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서울은 김한용의 제2의 고향이다. 서울 도심의 사진은 광고 홍보용 이미지로 서울시를 비롯한 많은 광고주로부터 의뢰받기도 하였지만 주위를 기록하는 사진가의 습관성 의무감으로 무수하게 많은 서울 사진이 남겨졌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아시아문화전당으로부터 의뢰받아 김한용 선생의 사진을 정리하면서 필자는 거의 매일 김한용 사진연구소에 출근하였다. 수십만의 사진 중 일 만점을 선별하여 디지털라이징하고 사진에 대한 메타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김한용 선생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사진의 시간과 장소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촬영 당시의 얘기를 많이 듣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김한용의 서울 사진에는 그의 삶이 담겨 있다. 선생이 살던 동네, 새벽 시장, 아이들의 놀이 등이 정겨운 모습이 담겨 있고 이런 사진들은 「서울풍경」 [3]이라는 책으로 엮어 나왔다. 김한용에게 서울은 자신의 삶이며 가족이고 일터였다. 2026년 스페이스 중학의 개관전인 <서울 메시지: 김한용의 사진>에서는 엄청난 양의 서울 사진 중에 그동안 발표되지 않았던 사진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선별하여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서울 메시지>와 같이 서울 사진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규모의 항공 사진은 마치 그 길을 걸었던 것과 같은 기시감을 주며 관객을 맞이한다. “아.. 내가 어렸을 때 저 건물이 있었어.., 그 옆에는 소방서가 있었는데.. 이제는 무슨 건물이 들어섰지?” “내가 살던 집이 저기 어디였는데.. 이 골목이 맞나?” “아.. 조선총독부? 아니 중앙청인가? 이게 언제 없어졌더라?” 그 시대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기억하고 옛 일을 회상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를 반겨주는 서울의 이미지를 아스라이 간직한다. “와... 서울이 이랬나? 이때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없네?” “이 때는 어떻게 이 사진을 찍었을까? 드론도 없는데” 그 시대를 모르는 세대는 다른 감성으로 서울 사진을 대한다. 사진은 같으나 보는 이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자신 만의 이야기를 한다.
1층을 지나 계단을 오르며 창경원[4] 사진이 등장한다. 일제 시대에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꿔 부르며 벚꽃 나무를 심고 원숭이가 있는 동물원을 만들었다. 처음 보는 원숭이와 코끼리가 신기하여 사람들이 몰리고 밤 벚꽃놀이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검소하기로 소문 난 필자의 외할머님은 아이들에게 벚꽃놀이를 보여주겠다고 하며 데리고 가서 창경원 입장권이 아까워 담벼락만 한바퀴 돌고 왔다고 한다. 창경원 사진을 다 보고 2층 복도에 들어서면 당시 서울의 가장 세련된 장소인 신신백화점 분수대가 나온다. 그 옆에는 60년대 초기 신세계 백화점의 외관 건물과 실내 쇼핑몰이 보인다. 어떤 이는 당시 가장 화려했던 장소였던 백화점에서 교복을 맞춰 입고 전시회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2층 전시실로 들어서면 서울의 건축물이 등장한다. 숭례문, 흥인지문의 옛 모습들, 소박하게 아무렇게나 쓴 “South Gate”라는 간판이 보이고 전차가 보인다. 서울의 전차가 다시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며 동대문을 보니 그 옆에 버스터미널이 있다. 이곳에 버스터미널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지도 않았던 의외의 기억이 떠오르며 다시 전시 이미지를 이어간다. 항공 사진들이 보인다. 김한용의 항공사진은 작품이라기보다 자료용으로 제작되어진 것이다. 당시 헬기에서 몸을 내밀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끈으로 묶은 채 촬영하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기록하였는데 지금 보아도 어디인지 잘 모르는 곳이 많다. 이 사진을 보며 누군가가 이야기 해주기를 바란다.
1960년대에 걸쳐 고층 건물들이 지어지며 서울 도심이 자리잡게 된다. 서울 광화문은 행정기관, 언론사, 레져, 문화예술 기관 등 다양한 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김한용은 특히 광화문 사거리를 많이 기록하였다. 연례 행사가 열리고 플랜 카드가 세워지고, 퍼레이드, 국군의 날 행사가 열리는 곳,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 거리가 수도 없이 기록되었다. 사진마다 거리는 조금씩 변화하고 도심의 변화로 연도를 추정한다. 시민회관이 지어지고 종합청사가 들어선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삼청동과 가까운 동십자각의 모습이 외부 벽 전시관에 걸렸다. 지금은 없어지 한국일보사 건물이 연도를 짐작케 한다. 문득 생각이 났다. “한국일보사 어린이 피아노 콩클에 나갔었는데...” 북촌, 성북동 등지를 찍은 항공사진에는 초가집, 기와집, 양옥집이 같이 어우러져 있고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멀리 위에서 촬영하여 기하학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마치 현대미술과 같은 세련됨이 있다. 김한용의 사진은 방대한 양의 이미지의 자료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놓칠 수 없는 미적인 감성이 있다.
<서울 메시지: 김한용의 사진> 전은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이도, 낯설게 그 시대의 서울을 바라보는 이에게도 각자가 할 말이 있다. 우리는 서울을 어떻게 봐왔는가? 김한용은 서울을 어떻게 기록하였는가? 아카이브니 자료니 작품이니 하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이미지의 힘이 있다. 감성이나 향수라는 감상적인 단어로는 담을 수 없는 뾰족한 그 무엇, 롤랑 바르트의 풍크툼[5]이 이런 걸까 생각해 본다.
[1] <Fast Forward: Photographic Message From Korea> Fotografie Forum International (Frankfurt, Germany), 8 Oct – 27 Nov 2005.
[2] 1959년 9월 15일 충무로 3가 스타다방 앞에 세를 얻어 <김한용 사진연구소>의 간판을 연다. 이후 김한용 선생이 타계하신 2016년까지 같은 자리에서 운영되었다.
[3] 김한용, 「서울 풍경」, 서울역사박물관, 2014,
[4] 1909년 11월 1일 개원한 유원지. 1983~1986년에 거쳐 다 철거하고 동물원 기능은 서울동물원으로 모두 이전했다.
[5] 푼크툼(punctum)은 라틴어로 '찌름'이라는 뜻으로, 사진을 봤을 때의 개인적인 충격과 여운의 감정을 말한다. 롤랑 바르트는 원래 기호의 구조를 통해 이미지의 신비성을 벗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문화ㆍ사회의 모든 것은 기호 상징의 사회맥락적 의미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어머니를 잃는 경험을 겪었고, 그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그녀의 옛 사진들을 찾는 과정 중에, 어머니의 사진을 불현듯 '맞닥뜨렸다.' 그 순간 그 사진의 인상은 그를 사정없이 찔렀다. 그것은 기호의 구조에서 나오는 보편적인 의미가 아니라, 개인적 추억과 정서에서 비롯된 감정적 의미였다. 이렇게 돌발적이면서도 강렬한 만남의 감정으로써 사진을 매우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으로 감상하는 것을 푼크툼이라고 한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열화당,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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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서울대 미학과 교수)
1947년 이후 <국제보도>, <부산일보> 소속 보도 사진가로 활동해 오던 김한용은 1959년부터 본격적인 광고 사진가의 길을 걷는다. 동시에 그는 1960년대부터 서울시청 홍보과의 의뢰로 다양한 시정 홍보사진을 촬영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사진이 바로 서울의 항공사진이다. 당시 서울시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도가 도시 근대화 사업을 통해 어떻게 현대 도시로 탈바꿈되었는지를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고자 했다. 서울의 이러한 발전된 모습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매체 중 하나는 사진이었다. 그중에서도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한눈에 시각적으로 조망하고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항공사진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시는 당시 보도, 광고 사진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김한용에게 항공사진을 의뢰했다.
서울시의 이러한 홍보 임무를 부여받은 김한용이 서울의 항공사진을 촬영할 때 그의 시선은 철저히 객관적, 기록적이었다. 그는 경비행기를 타고 서울의 상공을 다니면서 서울시가 홍보하기를 원하는 공간, 장소, 건물, 도로 등을 시의 지침에 따라 촬영했다. 그가 촬영해야 할 주요 피사체는 당연히 현대화된 서울의 모습을 상징하는 여러 랜드마크였다. 예컨대 반듯한 대로(大路)와 현대화된 건물이 즐비한 시청과 남대문 근처(도판 1, 도판 2), 새로 조성된 현대식 아파트 단지(한남동 외인아파트, 도판 3), 신축된 서울운동장(도판 4), 신설된 세운상가(도판 5) 등이었다.
김한용은 이러한 피사체를 포착하기 위해 가장 맑은 날 비행기를 타고 주로 중형카메라(6x6 혹은 4x5)를 사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촬영했다. 먼저 고도와 관련해서 그는 광활한 장면(도판 1)을 포함할 때는 높은 고도에서, 특정 피사체에 집중할 때는 낮은 고도에서 촬영했다. 예컨대 그는 낮은 고도에서 포착한 중앙고의 촬영 과정을 설명한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종로구에 위치한 중앙고등학교 전경 사진이다. 날씨가 좋아 학교 건물이 보기 좋게 잘 묘사되었다. 접근해서 촬영을 했기 때문에 학교 주위가 많이 나오지 않아 스케일이 작아 보인다.”
시점과 관련해서 그는 대부분의 사진을 수직 시점이 아니라 경사 시점으로 피사체를 촬영했다. 왜냐하면 항공사진에서 시점이 수직이면 지면의 모든 대상이 평면화, 추상화하여 식별 불가능하게 하고, 시점이 경사지면 지면의 대상이 입체감을 유지하여 대상을 식별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수직 시점은 지리학, 측량학, 항공학 등에서 주로 지면의 측량과 지도 제작을 위해 사용된다. 반면 경사 시점은 건물의 입체감과 도시의 전체 경관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에 김한용의 경우처럼 홍보사진에서 많이 사용된다. 김한용은 항공사진의 제작 과정에서 이처럼 고도, 시점도 중요하지만, 비행기 조종사와의 협력이 필수임을 강조한다: “항공사진은 조종사와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고도, 위치, 건물의 주요 방향이 잘 맞는 좋은 위치에 비행기가 통과해야만 멋진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서울의 항공사진을 촬영할 때 김한용의 시선은 이처럼 기본적으로는 실용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적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는 서울시 요구에 따라 기록적 관점에서 항공사진을 촬영하지만, 동시에 상공에서 처음 바라본 압도적인 스펙터클에 매료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체험하는 이러한 미적 감정은 그의 개인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이 상공에서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이다. 19세기 중반 항공사진의 발명자인 프랑스의 펠릭스 나다르(Félix Nadar)는 열기구를 타고 상공에서 바라본 파리의 스펙터클에 열광했다: “열기구는 우리에게 파리의 파노라마를 약속했다.” 나다르는 나아가 이 스펙터클을 ‘장엄한 광경’으로 표현하고 이 광경에서 ‘엑스터시’를 느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엑스터시가 […]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 장엄한 광경 속으로 다시 우리를 이끈다.”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도 항공 시점은 지상 시점에서 결코 체험할 수 없는 미적, 정신적 만족감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풍경은 평온하게 먼 곳까지 펼쳐지며, 관람자에게 “미학적으로 부유하고 도덕적으로 전능하다는 만족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김한용은 이러한 미적 시선을 자신의 여러 항공사진에서 드러낸다. 예컨대 시청-청와대 사진(도판 1)은 서울의 심장부인 시청 일대의 현대화된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려는 기록 홍보 목적에서 제작되었지만, 이 사진에도 그의 미적 시선은 이미 나타난다. 중앙청 건물에서 시청까지 뻗어 내려가는 태평로가 만들어낸 강력한 수직선, 시청에서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또 다른 태평로가 만든 거대한 사선, 그리고 건물들이 강한 햇빛을 받아 변모한 흑백의 작은 입방체들은 서울의 한복판을 점, 선, 면으로 구성된 거대한 기하 추상 이미지로 변환한다. 그의 이러한 조형적 시선은 남대문 주변을 촬영한 사진(도판 2)에서 더욱더 나타난다. 이 사진에서 그의 촬영 시점은 앞 사진(도판 1)보다 훨씬 더 수직으로 바뀌었으며, 이에 따라 이 이미지는 전체적으로 훨씬 더 기하 추상으로 변모하였다. 예컨대, 남대문을 둘러싼 대로들이 거대한 선들의 흐름으로 바뀌고, 수직 시점에 더 가까운 사진 하단의 건물들은 주로 옥상이나 지붕만 보여 선, 면, 입방체로 바뀌었다.
김한용의 이러한 기하 추상성은 한옥마을을 촬영한 항공사진(도판 6)에서 극단화된다. 이 사진에서 그의 촬영 시점은 거의 수직이기 때문에, 한옥마을의 집들이 구성하는 다양한 기하학적 모습은 한층 더 드러난다. 그는 노년에 한 이 사진에 대한 언급에서 자신의 시선은 한옥집들의 다양한 기하학적 ‘구조’에 관심을 가졌음을 피력한다: “정확히 장소는 기억나지 않지만 공중에서 바라본 한옥의 집결지인 것은 틀림없다. ㄱ자, ㄴ자, ㄷ자 등 다양한 구조의 한옥집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사진이다.” 또한 그는 항공사진을 촬영할 때 사진의 구도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그는 특히 대로, 다리 등을 촬영할 때 대각선 구도로 배치하여 변모하는 서울의 역동성을 강조했다. 예컨대 그는 용산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한강대교를 강력한 대각선 구도의 사진(도판 7)으로 표현했다: “한강 위에 놓인 최초의 인도교다. 6.25 당시 이 다리에서 많은 피난민이 희생되었다. 공중에서 한강대교를 대각선 구도에 두고 촬영했다.”
1960-70년대 이처럼 실용적, 미적 시선에서 촬영된 김한용의 항공사진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의 시선과 만났을 때 과연 어떻게 수용될까? 사진이 지닌 놀라운 힘은 어떤 인간보다도, 심지어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보다도 사진에 찍힌 것을 더 탁월하게 기억한다는 데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사진은 우리에게 그곳에 있었던 것에 대한 관찰과 성찰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한용의 항공사진을 어떤 방식으로 관찰하고 성찰할까? 그 수용 방식은 그 사진을 보는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그럼에도 보는 사람들 사이에 일정 부분 공통의 수용 방식은 존재한다.
김한용은 자신이 촬영한 이 항공사진에 대해 한참 후인 2013년 오늘날 관점에서 서술하면서 이러한 수용 방식을 드러낸다. 예컨대 그는 청와대-시청 사진(도판 1)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항공에서 내려다본 사진으로 시청 광장부터 멀리 중앙청과 청와대까지 한눈에 잘 보인다. 지금은 사라진 반도 호텔과 대한체육회 건물도 보인다. 대한체육회 자리에는 현재 플라자호텔이 들어서 있다. 정부종합청사도 건설되기 전으로 지금 보면 조금 초라한 느낌이다.” 김한용의 이 서술은 흥미롭게도 현재 이 사진들을 보는 우리의 일반적인 독해방식을, 그 사진을 찍었던 주체의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다. 먼저, 그는 사진 수용의 첫 단계인 사진의 장면 전체를 조망한다(“항공에서 내려다본 사진으로 [...] 한눈에 잘 보인다”). 그런 다음, 그는 오늘날 관점에서 이미 사라진 것을 식별한다(“지금은 사라진 [...] 건물도 보인다”). 이어서 곧바로 사라진 곳에 새로 나타난 것에 관심을 둔다(“대한체육회 자리에는 현재 플라자호텔이 들어서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 시점에서 관찰에서 성찰의 단계로 넘어간다(“지금 보면 조금 초라한 느낌이다”). 그의 이 서술은 현재 우리가 과거의 기록사진을 접할 때 진행하는 해석 과정을 거의 그대로 전달한다. 즉, 시선이 전체 장면에서 점차 디테일로 이동하기, 디테일(장소, 건물, 도로, 인물 등) 식별하기, 사라진 것을 발견하기, 사라진 것과 새로 등장한 것을 정신적으로 교환하기, 지금 관점에서 성찰하기 등이다. 이 항공사진들에 등장한 공간에 대해 김한용과 공통의 기억을 지닌 동시대 사람들은 아마도 상당 부분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진을 수용할 것이다.
김한용의 이러한 사진 수용은 주로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역사적 서술에 머문다. 그렇지만 그의 사진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러한 공적인 기억과 동시에 사적인 기억도 불러일으킨다. 유년 시절에 이 사진 속에 있는 집에 살았거나, 학교를 다녔던 누군가에게 이 사진은 그만이 간직하는 여러 추억과 사적인 감정을 촉발할 것이다. 모든 사진은 사적인 영역에 깊이 감춰진 기억을 촉발하여 현재화하는 탁월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는 <밝은 방(La Chambre Claire)>에서 1930년대 초 청소년 시절에 자신이 갔던 공간(프랑스 남서부 해변가와 파리의 다리)이 등장하는 두 장의 사진을 보면서 깊은 추억에 잠긴다. “내가 [사진에서] 1931년의 비아리츠 해변(비아리츠, Biarritz)(라르티그, Lartigue)이나 1932년의 퐁데자르(Pont des Arts)(케르테스, Kertész)를 볼 때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해수욕객들 사이에서, 혹은 오가는 행인들 가운데, 어쩌면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나였을지도 모른다. 바이욘(Bayonne)에서 트램을 타고 그랑드 플라주(Grande Plage)로 수영하러 가던 어느 여름 오후였을지도 모르고, 혹은 자크-칼로 거리(rue Jacques-Callot)의 우리 아파트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 오라토리오 사원(Temple de l’Oratoire)으로 향하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을지도 모른다.”
김한용의 항공사진은 바르트의 이러한 진술처럼 당시 그 공간에 거주했거나 그 거리를 오갔던 이들에게, 단순한 도시 풍경을 넘어 개인적 기억의 층위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사진 속에서 점, 선, 면으로 환원된 건물과 도로는 누군가에게는 통학길이었고, 첫 직장이었으며, 가족과의 산책로였을 것이다. 그의 항공사진은 지상을 추상화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추상화된 장면은 각자의 삶이 얽혀 있던 과거의 시간을 되살린다. 사진은 본래 광화학적 장치가 만든 차가운 시공간의 흔적일 뿐이다. 하지만 사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접촉하는 순간, 그 표면은 기억, 감정, 욕망 등이 스며드는 신비로운 공간으로 전환된다. 공적인 기록으로 생산된 이미지가 사적인 회상의 장으로 재맥락화되는 지점, 바로 그 전환의 순간에 김한용의 항공사진은 도큐먼트를 넘어 기억과 사유의 파노라마로 확장된다.
1) 서울역사박물관, 『김한용의 서울풍경』,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2013, p. 72.
2) Ibid., p. 57.
3) Félix Nadar, “Le dessus et le dessous de Paris,” In Paris guide par les principaux écrivans et artistes de la France, deuxième partie, La vie, 1569-1591, Paris: Librairie internationale, 1867, p. 1579.
4) Félix Nadar, When I Was a Photographer, Translated by Eduardo Cadava and Liana Theodoratou, Cambridge, MA, and London: MIT Press, 2015, p. 58.
5) Georges Didi-Huberman, “Penser penché”, In Vues d’en haut, edited by Angela Lampe, 136-143, Metz: Centre Pompidou-Metz, 2013, p. 196.
6) 서울역사박물관, p. 74.
7) Ibid., p. 80.
8) Ibid., p. 16.
9)
10) Roland Barthes, La Chambre claire : Note sur la photographie, Gallimard, Seuil, 1980, pp. 130-131.